“청인들은 수지노래에 관심이 너무 많았습니다. 농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강남대학교 외래교수이자 수어민들레 대표인 변강석 교수는 〈2024 수어워크숍〉에 참석해 20년 전 수어동아리 회장을 맡았을 때를 회고하며 청인들의 수지노래에 대한 열광에 좌절하였던 경험을 공유하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수지노래는 청인들의 열광 속에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청인들은 수지노래에 관심이 너무 많고, 농인의 삶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수지노래의 중심에는 수어동아리가 있다.
수지노래는 흔히 “수어노래” 또는 “수화노래”로 알려져 있지만, 손끝사이는 「손끝사이 회칙」에 따라 “수지(手指)노래”로 지칭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수지노래는 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수어의 단어를 따왔지만, 수어의 문법을 안 따르는 것을 넘어 파괴하는 수준의 수지한국어 일색이다. 수어를 언어로 볼 수 있는 이유는 수어가 고유한 문법 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어를 최우선적으로 보존하고 알려야 할 책임이 있는 수어동아리는 반대로 자신들의 책무를 방기하고 회피한 채, 농사회의 비판에도 수지노래를 계속함으로써 수어동아리로서의 존립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수지노래로 수어를 배우는 사람들은 수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이들은 수어는 한국어를 수지를 이용해 옮긴 것에 불과하다는 깊은 오해에 빠지게 된다.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을 위해 투쟁해온 농사회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 수어는 음성언어와는 별개로 시각·동작 체계로 발전한 고유의 언어라는 인식을 퍼뜨려야 할 수어동아리에서 오히려 수어에 대한 혐오·차별만 증식시키는 효과만 낳는 꼴이다. 수지노래는 농인의 문화가 아니다. 수지노래는 오히려 청인이 수어를 한국어의 문법에 구속시킴으로써 농인과 수어를 억압하는 동시에 수어를 ‘아름다운 사랑의 손짓’이라고 낭만화하며 농인의 자랑스러운 문화를 제멋대로 전유(專有)해온 폭력이자 혐오·차별의 역사이다.
2024년 9월 23일은 세계 수어의 날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 날은 “모든 농인과 그외 수어 사용자의 언어적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수어가 음성언어와 독립되어 가지는 고유성을 수호하고 있는가? 수지노래가 존속하고 있는 한 수어는 존중받을 수도, 보호받을 수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수지노래를 고집하는 수어동아리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 이에 우리는 각 수어동아리에 수어를 농인의 고유한 언어이자 문화로서 존중하고, 수지노래를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